Page 35 - 에코힐링 35호(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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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동화
현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수 얼굴이 굳어지면서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가방 속에서 끄집어낸 원추리꽃들이 다 부서져 있었다. 수민이 엄마
도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수민이가 괜찮다고 하였다.
“우리 아파트 뒷산에도 원추리꽃이 많을 거야.”
숲은 바로 아파트 뒤에 있었다. 숲에는 수민이의 예상보다 원추리꽃이 더 많았다. 꽃대를 위로
쭉 뻗어서 나팔 모양의 꽃을 피우는 원추리꽃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꽃을 딴 수민이랑 현수가 집에 오자, 엄마가 볶음밥을 해놓았다. 둘은 볶음밥을 원추리꽃에다
넣었다. 노란 원추리꽃과 밥이 어우러져 근사한 꽃밥이 되었다.
“어어, 보기도 좋고, 아삭거리는 것이 오이를 씹는 것 같아.”
현수가 연달아 꽃밥 두 개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난 단맛이 느껴지고, 꼭 양상치를 씹는 것 같은데...”
수민이도 원추리꽃밥을 우적우적 씹어댔다. 씹을수록 특별한 맛이 났지만, 그 맛은 어떻게 설명
할 수가 없었다.
“암튼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아주아주 특별한 맛이야. 현수 너 때문에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마워.”
선생님은 어디선가 재잘재잘 새소리가 들리자 말을 멈췄다. 그 새는 5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떠 “아냐, 나야말로 고마워. 수민이 너 덕분에 이런 특별한 음식을 엄마한테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들어댔다. 수민이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찌바찌바, 꽥 재르르 주루루 지그지그....” 마치 외계인
진짜 고마워.”
이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 새가 노랑턱멧새 수컷이라고 했다. 노랑턱멧새 수컷은 현수가 악수를 하듯이 수민이의 손을 잡았다.
암컷에게 고백을 할 때는 종일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댄다고 했다.
숲속으로 더 들어가자 “드르륵,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딱따구리라고 했다. 딱따구
리는 나무를 통해서 말을 한다니, 수민이는 참 신기했다. 박새들 소리도 녹음했다. 박새도 노랑
턱멧새만큼이나 다양하게 말을 했다. 수민이는 새들이 이렇게 다양한 말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숲을 나오다가 연분홍색 꽃이 보이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렀다.
“이건 원추리꽃입니다. 원추리는 독이 없고 순해서 어린 순은 뜯어서 나물을 해먹고, 뿌리는 말
려서 가루를 만들어 국수 같은 것을 해먹고, 꽃은 꽃밥을 해먹어요. 꽃밥은 여러분도 할 수 있어
요. 싱싱한 꽃을 부스러지지 않게 따서 꽃술을 떼어내고 씻은 다음, 밥을 그 꽃 안에다 넣으면 끝
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일날 시루떡을 했는데, 떡에 있는 붉은 팥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해서 그런 겁니다. 원추리도 붉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생일밥으로 해먹었답니다.”
그때부터 현수는 원추리꽃을 따서 소중하게 가방에다 넣었다. 수민이가 왜 그걸 따냐고 묻자,
오늘이 엄마 생일이라고 하였다.
“근데 갑자기 입원하시는 바람에 아빠랑 이모도 엄마 생일을 다 까먹은 것 같아. 그래서 더 마음
이 아팠어. 이따가 병원에 갈 때, 꽃밥 해서 가면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아.”
숲놀이가 끝나자 수민이가 현수한테 말했다.
“현수야, 우리집에 가서 꽃밥 만들자. 도와줄게.”
ECO HEALING 2022 SUMMER VOL_35 34ㅣ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