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에코힐링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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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치유의  힐링 에세이힐링 에세이





 풍요로운   “어서 와, 이제 곧 시작이야!” 다람쥐가 내게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물  곳을 찾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상에 맞장구라도 쳐주듯 바람이 불자 우수
 가을 숲의 감동  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깜빡 있고 있던 일이 떠올랐는지 “이따 만나  수 낙엽비가 내렸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
                       으며 걷다보니 역시나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무둥치 위에 도토리가 소
 자.” 하고서 바삐 돌아갔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뒤쫓았지만 금세 어
 딘가로 사라져 눈으로도 놓쳐버렸다.   복, 솔방울도 수북, 알록달록 낙엽으로 장식한 멋진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다. 나뭇가지를
 글 김슬기 그림책 작가
 <촉촉한 여름 숲길을 걸어요> 저자   강원도 춘천에 있는 오봉산을 오르다 보면 조용한 골짜기에 ‘참선수행을   주워다가 젓가락 삼고 얼른 맛이라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몇 걸음 더 옮기니 바위위에도
 하는 곳’이라는 낡은 안내판이 있다. 그 곳은 번뇌와 망상이 사라진다고   잣방울과 망개나무 열매며 산수유 열매로 차린 다과상이 놓여 있었다. 길목마다 이름 모를

 해서 ‘척번대’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 평상처럼 널찍하고 높은 바위 탑이  산나무 열매와 도토리가 소복소복 쌓여있었다. 예쁜 낙엽장식도 잊지 않고 말이다. 가만히
 다. 그 위에 올라 앉아 숲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만 다람쥐 비밀파티에 온 게 아닌가 보다. 줄 지은 개미들과 작은 거
 가만가만 편안해진다. 그 해 가을 어느 날도 척번대에 올라 골짜기를 내  미와 풀벌레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걸음을 재촉했다. 걷다보니 이번에는
 려다보며 바람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바로 그 때, 살포시 내 옆으로 다  밤송이가 말 그대로 한가득이다. 이렇게 풍성한 파티라니! 참으로 넉넉한 인심 아니, ‘다람
 람쥐가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내가 보던 곳을 다람쥐도   쥐 심ʼ이다.

 같이 내려다보는가 싶더니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러기를 몇 번, 그  산 정상에 올라 내가 걸어온 길과 굽이굽이 펼쳐진 산새를 둘러보았다. 숲은 온통 하나의 커
 렇게 꽤 길게 같은 바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다람쥐는 무슨   다란 축제였다. 어느 한 곳에서만 다람쥐들의 비밀파티만 열리는 게 아니었다. 겨우내 꿈을
 생각이 난 것처럼 다시 돌아갔다.    키우고 봄에 온 힘을 다해 싹을 틔우고 한여름 꿋꿋하게 살아낸 동물과 식물, 숲 속 모든 생
 숲에서 본 동물과 이렇게 오랫동안 눈을 마주한 것이 아마도 처음이었  명들이 이곳저곳 빈틈없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름다운 단풍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
 을 것이다. 신기한 경험 덕분에 나는 상상력이 발동해서 마치 다람쥐와   놀이인 셈이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어느 하나도 같은 불꽃이 없다. 그냥 빨갛게 노랗게 물들
 짧은 대화라도 나눈 것 같았다. 상상은 계속됐다. ‘혹시 이 숲에서 다람  었다고 하기에는 무척 아쉽다. 주홍색, 자홍색, 다홍색, 황토색, 황록색 등등 알고 있는 색

 쥐들의 비밀파티라도 열리는 걸까? 곧 시작이라는데 어디 한번 나도 그   이름을 모두 갖다 대도 모자랄 정도로 풍성한, 그야말로 색깔 축제였다. 이렇게 멋진 축제에
                       참석한 이상 나도 나의 봄날과 뜨거웠던 여름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숲으로부터 동글동글 예쁘게 생긴 도토리 한 알과 밤 두 알을 선물로 받아
                       왔다. 그냥 받기만 할 수 없어서 가방 속에 남은 사과 하나를 꺼내 커다란 밤껍질을 접시
                       삼아 올려놓고 왔다. 그 날 나에게 말 걸어 준 다람쥐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혹시 알

                       까? 척번대를 다시 찾는 날, 또 나에게 다가와 인사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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